세부 여행에대한 마지막 포스팅이다. 시티투어, 딱히 시티투어에 대해 언급할 내용이 없을 것 같아 포스팅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을 것 같아 시간을 내어 정리해본다.
먼저 시티투어는 필리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짧막한 수업이라고 생각하고 참여하면 좋다. 단순히 여행상품 중 하나로 여기고 참여한다면, 전혀 의미없는 시간이되며, 더운 날씨에 짜증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시티투어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평생에 한번 정도만 하게될 필리핀 시티투어를 세계사를 공부한다는 느낌을 참여하면 남는게 많을 수 있는 여행상품이다.
대부분 그렇든 처음도착하는 막탄 슈라인이다. 라푸라푸 왕과 마젤란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공원이다. 도착하고 차에서 내리면 물고기 떼처럼 우산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돈쓰고 싶으면 우산을 받으면된다. ( 모든게 공짜가 없다 )
마젤란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막탄 슈라인
라푸라푸 동상이 세워져 있는 공원
라푸라푸 왕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마젤란의 기념비는 라푸라푸 동상과 마주보고 있다. 세계 최초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한 ( 세계일주 ) 위인 마젤란은 정말 어이없게 죽었다. 자만심이 스스로를 죽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마젤란은 다시 동쪽으로 배를 돌려도 되었지만, 마젤란은 계속 서쪽으로 향했다. 태평양에 대한 지식이 없던 시절에 태평양 횡단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1521년 3월 괌 섬에 도착, 이어 108일간의 항해 끝에 마젤란 함대는 1521년 4월에 필리핀에 도착하였다(이것이 필리핀에 가톨릭이 전파된 유래이다).
그는 인도 총독 밑에 있을 때에 와 본 적이 있는 몰루카 제도의 경선을 넘음으로써, 사실상 그의 세계일주는 이루어진 것이다. 마리아나 제도와 필리핀 군도는 이때 이름 붙여진 것이다. 이 무렵 그의 배는 3척밖에 남지 않았다.[1]
마젤란 일행은 이를 "신대륙 발견"으로 여겼다. 마젤란의 ‘발견’은 원주민들의 입장에선 억울하게 당한 ‘침략’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 수백 년에 걸친 식민지 ‘수탈’과 ‘압제’가 시작된 역사의 신호탄이었다.[2] 필리핀에서 마젤란은 열심히 기독교 신앙을 전파했다. 마젤란은 처음 세부 섬에 상륙하여 이 지역 부족의 추장 주아나 일족과 부족 800여 명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2] 그러다가 1521년 4월 27일 마지막 섬인 막탄 섬에 갔다가, 스페인 왕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추장 라푸라푸와의 막탄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향년 41세
당시 백병전에서 유럽 군대의 무거운 갑옷이 불리했기 때문에 마젤란은 슬금슬금 물러나 배에 돌아간 다음 총과 대포로 응사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선원들이 말을 잘못 들어 모두다 후퇴해 버렸고 남은 것은 마젤란 뿐이었다.
원주민들은 마젤란을 마구 창으로 짓이겼다.
출처 - 위키피디아
그렇다 막탄 섬의 원주민들을 무시한 마젤란은 지형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썰물에 섬에 배를 정박하여 그 뻘밭을 무더위 속에서 뛰어오다 지쳐 전투의지를 상실했다.
위대한 왕 라푸라푸를 기리는 석판과 전투 당시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
공원 안쪽으로 걸어가면 썰물로 인해 물이 빠져버린 바다를 볼 수 있다. 조수간만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 더운 날씨에 저 먼 곳에서 이곳 까지 뛰어왔다. 막말로 지쳐서 싸움도 못하고 쳐맞고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중간에 어딘가 경유해서 간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 후에 방문한 곳이 도교사원이었다.
정말 그림처럼 예쁜 도교사원 입구의 모습
도교사원이 위치한 도시는 중국의 부자들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한다. ( 미국의 비버리힐즈와 같다고 한다 ) 도교사원은 동양 풍수의 맞게 건축되었다고 하는데, 뒤 쪽엔 산, 앞 쪽엔 넓은 바다가 보인다. 도교 사원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신들이 있다. 인간에서 신이 된 관우와 포청천, 그리고 원래부터 신 이었던 서유기의 제천대성, 불교에 등장하는 신들.. 이렇게 여러가지 복잡한 신들이 있는 이유는 "도교" 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교(道敎)는 고대 중국에서 발생한 종교로서, 신선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음양 · 오행 · 복서 · 무축 · 참위 등을 더하고, 거기에 도가(道家)의 철학을 도입하고, 다시 불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했다. 도교는 하나인 도(道)의 세 가지 모습인 옥청(玉清: 원시천존) · 상청(上清: 영보천존) · 태청(太清: 도덕천존)의 삼청(三清)을 최고신으로 하는 다신교이다.[1] 경전으로는 도교 성전의 집성인 《도장(道藏)》이 있다. 도교의 신자를 도교인 또는 도교도라고 하며, 우화등선(羽化登仙)을 목표로 하는 무리라는 뜻에서 우류(羽流)라고 하기도 한다. 도사(道士)는 도교의 전문적 종교가이며 여성 도사는 여관(女冠)이라고 한다.
도교는 크게 도교 경전으로서의 《도장》, 도교 사원으로서의 도관, 도교의 성직자 또는 전문적인 종교인으로서 도사 · 여도사의 체제를 갖춘 교단 도교(敎團道敎) 또는 성립 도교(成立道敎)와 이에서 벗어난 도교 단체 또는 도교 신앙을 통칭하는 민중 도교(民衆道敎)로 구분한다. 현세이익적인 면도 있지만 수행을 통해 신선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교단 도교에 비해 민중 도교는 전적으로 현세이익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도교의 창시자는 오두미도 또는 천사도의 창시자인 후한(25~220)시대의 장도릉(34~156)으로 알려져 있다. "도교"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북위(386~534)의 구겸지(365-448)로, 구겸지는 도교를 집대성한 사람 또는 최초의 교단 도교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2]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통치자인 황제(黃帝)와 도가의 이론가라 할 수 있는 노자(老子)를 신봉한다고 하여 황로사상(黃老思想) 또는 황로교(黃老教)라고도 한다.
출처 - 위키피디아
정리하자면 도교는 불교가 아니다.
오전 내내 돌아다니느라 더웠는데 이곳에선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이 곳을 나와 다음은 SM 몰로 이동하였다. SM 몰은 원래는 중국인이 창업한 신발가게라고 한다. Shoes Mall... HTC 급이다 High Tech Computer.. 중국인의 작명은 정말 직관적인 것 같다. SM 사업의 크기는 점차 커저 필리핀을 장악하는 거대 기업이 되었다고한다. 흔히 볼 수 있는 Save More 도 SM 기업의 일부이라고 한다. 심지어 졸라비도 SM 기업의 일부라고... ( 졸라비 존 맛 졸 쌈 )
어쩃든 SM 몰에 들어가 지하에 있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한 뒤 쇼핑을 했다. 점심식사는 일식집을 발견해서 신이나서 들어 갔지만, 맛은 내가 알 던 그 맛이 아니였다.
일본 라면 시킴, 맛은 좀 다름
오야코동 ( 닭고기 덮밥 ) 시킴. 맛은 좀 다름....
쇼핑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약속 시간에 맞춰 이동하기 위해 스타벅스에서 휴식을 취함
가격은 싸고 내가 알던 그 맛 과 같음. 하지만 뜨거운 음료에만 홀더를 주는건 함정.
휴식을 취한 뒤 약속장소에서 가이드를 다시 만나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Yap-Sandiego Ancestral House에 방문했다
Yap-Sandiego 이 곳은 역사적인 첫 가족의 탄생을 기리는 곳 이라고한다. 중국의 Yap 가문과 스페인의 Sandiego 가문이 만나 결혼을 했다고하는데, 이 이후로 중국인과 스페인인이 결혼을 하여 다문화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 났다고한다. 그래서 필리핀은 중국문화와 스페인 문화가 섞여 있는 나라인 것 같았다. ( 스페인의 플라멩고에 나올 만한 음악들이 필리핀에 많다고한다. )
입구에서 사진찍어주는 얍-산티아고 가문의 후손이라고 한다 ( 정말인진 모름.. )
얍-산티아고 조상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필리핀 세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각상
라푸라푸 왕, 세부 무역, 필리핀 독립군 등 많은 인물들이 한 곳에 모여있다.
(라푸라푸 - 도시 이름, 다금바리)
그 다음 이동한 곳이 마젤란 십자가였다. 필리핀에 그리스도교가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원주민 800여명이 세례를 받은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마젤란이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세웠다고 한다. 이 십자가의 나무를 조금 달여 나시면 병이 낫는다고 믿기 때문에 나무를 조금씩 깎아서 가져가는 사람이 끊이질 않아 현재는 단단한 나무로 씌워놓았다고 한다.
마젤란 십자가 천장의 모습
그리고 이동한 산토니뇨 성당. 크리스찬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관심은 없었다. 만약 크게 관심은 없었다. 교황청에서 Saint 라는 명칭을 내린 성당이 세계에 몇개 없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라고 한다. 교인이라고 하면 성지순례가 될 수도 있는 그런 곳 일거란 생각이든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산 페드로 요세였다. 항구 바로옆에 위치한 산페드로 요새는 외세 침입을 막기위해 세워졌다. 필리핀의 많은 요새와 성벽들 중에 가장 오래됐다고 한다.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2차 세기대전 당시엔 포로수용소, 감옥 등으로 이용되기도 했고, 군사 훈련소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요새 위쪽에는 서울 외곽의 성벽처럼 산책로가 있다. 크진 않지만 필리핀 저녁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분위기였다.
요새 내부의 모습
출입구에 장식되어 있는 세부를 만든 사람들
이것으로 세부 시티투어가 마무리 되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문화 체험을 할 수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 나중에 세부에 방문한다면, 시티 투어는 다시 하진 않을 것 같다. 한번이면 충분하다. 한국의 서대문 형무소와 용산 쪽을 가보는게 더 좋을 것 같다.. )
24개월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좀 힘든 일정이었지만, 아기가 없는 사람들에겐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라고 추천하고 싶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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