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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 속 보살 그림을 아시나요 ?

패밀리그램 2025. 5. 24. 08:00

사라진 부처님의 흔적? 박정희 시대 미발행 만원권과 '보살 그림자' 미스터리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의 미발행 만원권

 

 1972년, 대한민국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한국은행은 고액권 발행을 결정했고, 그 주역이 될 만원권 지폐의 도안으로 경주 석굴암 본존불불국사 전경을 낙점했습니다. 발행 공고까지 이루어지며 세상에 나올 날만을 기다렸던 석굴암 만원권. 그러나 예기치 않은 거센 반발에 직면하며 역사 속으로 쓸쓸히 사라지고 맙니다.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는 국가지폐에 특정 종교의 상징을 새기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심지어 불교계 내부에서도 신성한 부처님의 모습을 돈에 담는 것은 불경하다는 의견이 제기되며 논란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의 고심 끝에 석굴암 도안의 만원권 발행 계획은 백지화되고 맙니다.

 

새로 발행된 만원권에 숨겨진 보살

 

 

 그렇게 석굴암 만원권은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듬해인 1973년 6월, 새로운 만원권이 발행됩니다. 앞면에는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 중 한 분인 세종대왕의 영정이 자리 잡았고, 뒷면에는 웅장한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그런데 이 새롭게 발행된 만원권 뒷면의 근정전 그림 속에서 아주 작은 보살상의 형체가 희미하게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어떻게 석굴암 도안이 폐기된 만원권에 보살의 흔적이 남게 된 것일까요?

 화폐박물관에서 설명을 들은 바로 위조 방지를 위해 보살이 새겨진 은화(Watermark)  가 새겨진 종이가 너무 많아 재활용했다고 합니다. 새 만원권 속의 작은 보살상은 발행 당시에도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미처 떠나지 못한 석굴암의 영혼'이라거나, '새로운 시대에도 불교적 가치가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는 증거'라는 낭만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는 확인되지 않은 추측일 뿐이지만, 발행되지 못한 석굴암 만원권의 드라마틱한 운명과 맞물려 더욱 흥미를 자아내는 대목입니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기존 용지를 재활용하여 새로운 만원권을 찍어낸 것은, 이는 당시 정부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정책 기조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막대한 양의 인쇄물을 폐기하는 대신, 최소한의 수정 작업을 거쳐 재활용함으로써 예산을 절감하려는 노력이었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디자인의 만원권이 발행되면서, 근정전 속 작은 보살상의 흔적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발행 직전에 사라진 석굴암 만원권과 그 잔영처럼 남아있던 보살상의 이야기는 한국 화폐 역사 속의 작지만 흥미로운 미스터리로 남아 우리에게 잊지 못할 여운을 남깁니다. 어쩌면 그 작은 보살상은 격동의 시대를 살아갔던 우리 민족의 다양한 염원과 이야기가 담긴, 작지만 의미 있는 상징일지도 모릅니다